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비롯되고 그것에 반응하여 나타난 비판이론, 철학, 건축, 예술, 문학, 문화 분야의 광범위한 발전 양상의 집합이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1900년경, 모더니즘은 서양 문화의 지적 영역에서 20세기 중엽까지 이어지는 지배적인 문화적 힘이 되었다. 모든 시대가 그렇듯이, 모더니즘은 서로 경쟁하는 다수의 개별적 방향을 포함하며, 하나의 분리된 통일체나 전체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주요한 일반적 특징은 흔히 “급진적 미학, 기술적 실험, 시간적 형식보다는 공간적 혹은 리듬적 형식, 그리고 자기의식적 반성”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인간 관계에서의 진정성 추구, 예술에서의 추상화, 유토피아를 향한 분투가 포함된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특징들은 일반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결여되어 있거나, 혹은 풍자의 대상으로 다루어진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진적인 예술 프로젝트가 전체주의와 연관되거나 주류 문화에 동화된 것으로 인식된, 모더니즘의 실패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불리는 사조의 기본적 특징은 1940년대 초반, 특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 1950년대 후반부터 모더니즘과 경쟁하기 시작하여 1960년대에 그 우위를 점했다는 데 동의한다. 그 이후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술, 문학, 영화, 음악, 연극, 건축, 역사, 대륙철학 등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지배적인 힘으로 존재해 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양식·인용·서사 수준을 아이러니하게 활용하는 경향, 서구 문화의 “거대 서사”에 대한 형이상학적 회의주의 또는 허무주의, 현실보다 가상의 것을 선호하거나(보다 정확히는 ‘현실’이 무엇으로 구성되는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 그리고 무한히 재생산 가능한 기호들의 자유로운 상호작용 속에 포섭되어 정신분열증과 유사한 의식 상태를 유발하는 주체에게서 나타나는 “정동의 감소” 등이 포함된다고 여겨진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대중문화와 학계 모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유행이 지나갔다”는 인식이 작지만 점차 확산되어 왔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대안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그중 하나인 이머저니즘은 여러 미술사 서적에 등장했지만, 이러한 제안된 명칭들 가운데 어느 것도 아직 주류 용어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포스트-포스트모던 시대

한 시대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합의는 그 시대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을 때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을 정의하려는 현재의 시도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주제는 대화, 환경적 참여, 성실성, 신뢰, 그리고 믿음이 포스트모던적 아이러니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깊이, 초점, 범위에서 크게 다른 다음의 정의들은 그 등장 순서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브루클린의 이머저니즘

1980년대 맨해튼의 포스트모던한 거리두기 미학에서 벗어나, 브루클린의 포트그린, 그린포인트, 윌리엄즈버그 지역의 창작 공동체들은 사회적·환경적 참여를 중시하는 포스트-포스트모던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미술사가 조너선 파인버그(1946-)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 윌리엄즈버그의 버려진 산업 해안가에 모인 예술가·음악가·작가들의 국제적 공동체는 “더 풍부하고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전체”를 지향하는 새로운 문화적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이 운동의 초기 선언문 가운데 하나인 1988년의 「You Sub Mod」는, 모더니즘의 확실성이 사라졌다고 해서 영원히 포스트모던한 회의 속에 머물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인포메이션 리추얼(정보 의례)의 개척자 에번 피셔(1959-)는 이 선언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너는 모더니즘을 믿지 않았고, 그 헛된 반영인 포스트모더니즘에도 속지 않았다. 네가 발견한 것은 몰입 그 자체였으며, ‘객관성’이란 또 하나의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 ‘브루클린 이머저니스트’라 불린 윌리엄즈버그의 문화권은 “생명력 주입”, “전감각주의”, “맥박 가까이”, “웹 잼”, “상호 세계 구성” 같은 개념을 제시하며 환경적 몰입과 매혹을 탐구했다. 시스코 브래들리(1976-)는 저서 『윌리엄스버그 아방가르드: 브루클린 워터프론트의 실험적 음악과 사운드』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여러 면에서 이머저니즘은 뉴욕 예술계 진화의 다음 단계였다. 그것은 개념미술가 조셉 코수스(1945-)나 미니멀리스트 도널드 저드(1928-1994)와 같은 인물들의 합리주의적 작품들에서 1980년대의 포스트모던적 반란으로 발전해 온 그 흐름의 연장선에 있었다. … 초기 이머저니즘 이론가들 가운데 몇몇은 이렇게 말했다. ‘[이머저니스트들은] 냉정하고 포스트모던한 냉소주의로부터 문화적 규범들을 더 따뜻한 어떤 것으로—즉, 몰입적이고 상호적인 세계 구성으로—전환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터너의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1995년, 조경가이자 도시계획가인 톰 터너(1946-)는 도시계획에서 포스트-포스트모던적 전환을 요구하는 책 한 권 분량의 선언을 발표했다. 터너는 “무엇이든 허용된다(anything goes)”는 포스트모던의 신조를 비판하며, “건축 환경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성과 신념을 조화시키려는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의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을 목격하고 있다”고 제안한다. 특히 터너는 도시계획에서 시간을 초월한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인 패턴들의 사용을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패턴들의 원천으로, 다른 여러 것들 가운데에서도, 미국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1936-2022)의 도교적 영향을 받은 작업, 형태심리학, 그리고 정신분석가 카를 융(1875-1961)의 원형(아키타입) 개념을 인용한다. 용어 사용에 관하여, 터너는 사람들에게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여라—그리고 더 나은 이름이 주어지기를 기도하라”고 촉구한다.

엡스타인의 트랜스-포스트모더니즘

러시아계 미국인 슬라브학자 미하일 엡스타인은 그의 1999년 저서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연구』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 훨씬 더 광범위한 역사적 형성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이를 “포스트모더니티”라고 명명했다. 엡스타인은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이 결국에는 완전히 관습화되어, 새로운 비-아이러니적인 시 형태의 토대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데, 그는 이를 ‘trans-’라는 접두어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지칭할 수 있는 명칭들을 고려해보면, 접두사 “트랜스-”가 접두어가 특별한 방식으로 두드러진다 점을 발견하게 된다. 20세기의 마지막 3분의 1은 “post-”라는 기호 아래 전개되었는데, 그것은 “진실”과 “객관성”, “영혼”과 “주관성”, “유토피아”와 “이상성”, “근원”과 “독창성”, “진심”과 “감상벽” 같은 근대성의 개념들의 종말을 의미했다. 이제 이러한 모든 개념들은 이제 “초-주관성”, “초-관념론”, “초-유토피아주의”, “초-독창성”, “초-서정성”, “초-감상벽” 등의 형태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엡스타인은 현대 러시아 시인 티무르 키비로프(1955)의 작품을 인용한다.

수도-모더니즘

영국의 학자 앨런 커비는 2006년 논문 「포스트모더니즘의 죽음과 그 너머」에서,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사회-문화적 평가를 제시하며 이를 “수도(擬似)-모더니즘”이라고 명명했다. 커비는 수도모더니즘을 인터넷, 휴대전화, 인터렉티브 텔레비전 및 이와 유사한 수단을 통해 가능해진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며 피상적인 문화 참여에서 비롯된 진부함 및 피상성과 연관시킨다: “수도-모더니즘에서 인간은 전화를 걸고, 클릭하고, 누르고, 서핑하고, 선택하고, 이동하고, 다운로드한다.”

수도-모더니즘의 “전형적인 지적 상태들”은 ‘무지, 광신, 그리고 불안’으로 묘사하며, 그것이 참여자들에게 “최면 같은 상태”를 유발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매체로 인해 조장된 피상성과 사소한 사건들에 대한 즉각적인 참여가 만들어내는 총체적 결과는, “모더니즘의 신경증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자기애”를 대체하는 “침묵의 자폐”이다. 커비는 “수도-모더니즘”에서 미학적으로 가치 있는 작품은 나오지 않는다고 본다. 그 진부함의 예시로 그는 리얼리티 TV, 인터렉티브 뉴스 프로그램, “일부 위키피디아 페이지에서 발견되는 쓸데없는 말”, 다큐멘터리 형식의 연속극, 그리고 마이클 무어(1954-)나 모건 스펄록(1970-)의 에세이 영화 등을 꼽는다. 2009년 9월 출간된 저서 『디지모더니즘: 신기술이 포스트모더니즘을 해체하고 우리 문화를 재구성하는 방식』에서, 커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여파 속에서의 문화와 텍스트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한층 더 심화하고 세분화했다.


논의

커비가 말하는 피상적인 디지털 상호작용은 여러 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재구성이라 할 수 있으나, 그 참여 범위가 훨씬 더 국제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기계와의 상호작용에 기반을 둔 문화 — 특히 사용자들을 자신이 상정한 청중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하는 문화 — 는 앤디 워홀의 역설적인 선언,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를 되새기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기업적 기계 문화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거부는 브루클린 이머저니스트들, 터너의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심지어 엡스타인의 트랜스-포스트모더니즘이 구현한 풍부한 유기적 상호작용의 스펙트럼 속에서 나타난다. 피셔가 1988년에 제시한 ‘서브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이전에 존재했던 유기적 기반 혹은 “굴”로의 재연결을 장려하지만, 동시에 이 마지막 세 가지 포스트-포스트모던 운동을 미리 예견하기도 한다. 브루클린 서브모더니즘과 이머저니즘은 2023년 시스코 브래들리의 저서 『윌리엄스버그 아방가르드: 브루클린 워터프런트의 실험음악과 사운드』 에서 최근 논의된 바 있다. 이머저니즘의 절정기적 이벤트인 ‘오거니즘’은 1993년 《뉴스위크》, 1998년 《도무스》에서 다뤄졌으며, 2023년 브래들리의 저서와 2024년 《뉴욕타임스》에서 인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