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건축법

이중용 건축편집자

나는 이미 ‘어떤어떤 작가’라는 고정관념 속에 위치지어진 기성작가일 뿐이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내 작품에 대해서 더이상 진지하게 연구하거나 알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1 ㅡ 에밀 아자르

건축가 조병수에 관해 기록된 일화들을 체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이 건축을 향하게 된 결정적 계기라며, 젊은 시절 에밀 아자르Emile Ajar의 『자기 앞의 생生』이라는 소설에 흠뻑 젖어있었다는 이야기를 보게됐습니다. 궁금해서 책을 샀습니다. 그리고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Romain Gary(1914-1980)라는 소설가의 가명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작가에게 만들어준 ‘얼굴’이 한 작가를 얼마나 구속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얼굴’은 작가의 작품이나 작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소위 평론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에밀 아자르의 작품 속에 들어있는 로맹 가리의 흔적을 전혀 읽어내지 못했다며, ‘내가 얼마나 통쾌했을지 상상해보시라. 나의 작가 인생 전체에서 가장 달콤한 즐거움이었다.’는 기록마저 남겨두었습니다. 만약 건축가 조병수가 그런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려는 것이라면 이번 56호의 기획은 내용과 상관없이 대박일 겁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사실은 발견하지 못했고, 우리는 좀 지루한 건축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로맹 가리의 일화에서 공감을 느낀 부분은 한국의 건축가들이 대체로 어떤 고정관념 속에 위치지어진 기성작가일 뿐이며, 뭘 더 읽어야 할 지 모르는 상태에 놓여있기 쉽다는 점이었습니다. 대개는 건축 전문가들조차 건축가 개개인의 특징과 의미를 피상적인 수준에서 이야기하는 게 보통이니까요. 사용하는 표현이 전문적일 뿐 일반인 인식과 거의 차이가 없지 않나 싶을 때도 많습니다.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는지, 그가 흔히 쓰는 표현이 뭔지, 비싼 건지, 특이한 재료 혹은 시공법인지, 색다른 모양인지, 특별한 일화가 있는지 정도를 보고, 전문가는 전문용어로 일반인은 일상용어로 표현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나마 눈에 보이는 특징은 쉽게 이야기 소재가 되지만 의미 부분에서는 전문가들조차 규정짓기를 망설입니다. 일례로 건축가 조병수에 대한 기존 평가들을 보면, 상식적으로 동감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2거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의 건축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3거나, 더 이상의 실험을 기대하기 힘들 정도로 완숙의 경지에 달했다4거나, 한국 현대건축에서 희귀한 존재지만 최근 그의 변화가 왜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5거나, 대체로 건축이 진중하다6는 식의 이야기들을 볼 수 있습니다. 공감된다, 활발하다, 경지에 달했다, 희귀하다, 진중하다 같은 표현이 전문가 집단에서 바라보는 한 건축가의 위상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언가 찜찜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건축은 이제, 제5세대라 할까, 아주 확실한 전이의 시기에 있다.7 ㅡ 박길룡

『한국 현대건축 평전』(2015)을 지은 박길룡은 한국 건축가들의 세대를 다섯 단계로 구분합니다. 그는 1930-1940년대 박길용, 박동진을 제1세대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전후 복구 시기를 거친 다음 한국적 모더니즘을 추구했던 1960~1970년대 김수근, 김중업, 박희태, 정인국 등을 2세대로, 2세대의 실무책임자들이 중견으로 등장한 1970~1980년대 윤승중, 김원, 오기수, 홍순인 등을 제3세대로, 근대기 시대 세력과 분리되어 세대 교체를 이룬 1990년대 4.3그룹 등 건축가들을 제4세대, 그리고 2000년 이후를 5세대로 이야기합니다. 나이로만 치자면, 57년생인 조병수는 44~52년생 건축가들인 4.3그룹보다 조금 뒤쪽이고, 5세대를 형성하는 주요 그룹인 60년대생들보다는 조금 앞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동년배인 이종호와 한 해 위인 김준성 등이 앞 세대와 60년대생 이후 건축가들 사이에서 조금 다른 무게로 인식된다는 걸 감안하면, 조병수 또한 뚜렷한 세대라기보다는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전이되는 시기에 양쪽과 영향을 주고받는 역할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건축가의 특징이란 세대보다는 개인을 보는 게 더 합당하긴 합니다만, 4세대 건축가들과 5세대 건축가들을 구분짓는 커다란 맥락을 굳이 잡아보자면 ‘이상과 개인 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래 이상은 현실과 대결하고 개인은 공공과 배치됩니다. 그런데도 이상과 개인이 맞서는 것은 마치 공산주의가 자본주의 아닌 민주주의와 맞선 것처럼 보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공공성이라는 공공선과 대결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므로, 자기 작업에 몰두하는 이들은 공공성을 주장하는 이들을 이상주의의 자리로 밀어냅니다. 이상 때문에 현실을 희생하는 것은 시대 조류에 맞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사회 변혁을 꿈꾸는 이들은 개인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이들을 이기주의의 자리로 밀어냅니다. 조병수는 4세대의 특징을 공유하는 한편 5세대의 특징 또한 공유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공 사이에서 자연을 우선하는 점,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전통을 고려하는 점 등은 4세대와 유사하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현실로부터 시작하는 점은 5세대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그는 4세대의 뒤쪽에도 5세대의 앞쪽에도 서지 않습니다. 고개를 들어 건축계를 보면 거기에는 분명 주요한 그룹들이 있고 보이지 않는 라인이 그려지는데, 조병수는 계보도 없이 등장하고 다양한 무리들 사이에서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있습니다.

비서구권 건축과 소수중심 건축은 오직, 구미 학문의 서사의 견지에서만 출현하고, 눈에 보이게 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다.8 ㅡ 펠리페 에르난데스

하지만 건축가의 계통을 살핀다고 해도, 그가 어떤 건축가인가 하는 문제를 논하려고 할 때의 어려움은 이미 예정된 것입니다. 지금의 건축이야기 줄기는 서양건축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한국은 확실한 변두리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건축하는 이는 영어를 배워 한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일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 놓입니다. 생존을 위한 실용영어는 할 수 있는데, 문학적 소양으로 넘어가면 어려워집니다. 아이디어와 자신만의 관점/철학도 중요하지만,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독특한 문체를 만드는 일은 영어권 국가에서도 흔한 일이 아니니까요. 더 큰 문제는, 한국은 순수 영문학을 소화해 줄 독자들이 희소한 환경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다보니 순수하게 좋은 작업을 목표로 하는 이들조차 소수의 고급 취향만을 대변한다는 힐난을 듣기 일쑤입니다. 어느 시대든 ‘좋은 것에 대한 열망’이 제로가 되지 않는 이상 시장도 있고 작업도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미심쩍은 부분은 그 ‘좋은 것’의 판단이 어렵다는 겁니다. 판단이란 근거를 필요로 하고, 그저 인간이 가진 보편적 공통감각에 의존하여 많은 이들이 좋다고 하니 좋은 작업이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유서 깊음을 내세우는 모든 분야가 그렇듯 판단은 해당 분야의 전통에 근거하는 게 보통입니다. 전통은 곧 역사고, 현대건축의 역사를 가진 것은 서양입니다. 변두리의 피곤함이란 무엇보다 역사 없는 시간이 끊임 없이 반복되는 것 같은 몽롱함과 얼떨떨함에서 기인합니다. 한국 건축가는 주변에서 중심으로 가고 싶은 심정을 끊임 없이 드러내지만 그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거의 불가능할 것처럼 고착된 구조가 있으니까요. 흔히 알려진 것만도 일곱 단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건축가들을 끊임 없이 미끄러지게 하는 요소들 말입니다. 각 단계를 극복하는 전략들이 대체로 한국건축에서 주류로 인정 받게 되는 부분들이기도 합니다. (그림 1)

(순서나 대응방식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역건축가는 강력한 중심성으로 자신을 끊임 없이 주변으로 밀어내는 상황들에 대해 추상, 유행, 지역성, 작가주의, 컨텍스트, 전통, 글로컬 등의 방법으로 대응하며 버팁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한국건축가들은 대개 위 일곱 가지 정도의 키워드로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합니다. 대체로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중 유난히 느껴지는 부분에서부터 건축을 읽어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국건축가들은 서양건축의 그림자 개념으로만 존재하게 됩니다.

한국건축가에게 서양건축의 혈통증명서를 떼어 주거나 서양건축 전통을 수호하느라 수고했다며 기사 작위를 수여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중심 지향(성)은 문화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중심을 향하거나 혹은 그에 맞서고픈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이 지향(성)에서 벗어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타난다면 멋진 일이겠지만, 호미 바바의 ‘혼성성이 펼쳐지는 제3공간’ 등 아직은 대부분의 관심이 ‘사이’에 모입니다. 그 관점에 근거하여 임의로 몇 가지 기준들을 만들어 보면 주류와 비주류의 논리와 상황 사이에 놓인 제3지대, 이방인으로서의 한국건축가의 위상과 이야기들을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림 2) 대안으로서의 지역건축가, 이방인들의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다시 읽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쉰들러는 작은 단층 주택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드문 공법을 시도했다. …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자, 가장 적은 비용이 드는,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방법. 바로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구조의 건축이었다. 라이트나 쉰들러가 모두 우연히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기술을 발견했을까? 아니었다. 당시 LA의 건축 기술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표현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9 ㅡ 쿠마 켄고

1920년대 미국 건축가가 겪었던 일이 1990년대 한국건축가 조병수에게 똑같이 일어납니다. 그는 현대화된 지역성Contemporary Vernacular을 타깃으로 한국의 성격을 건축으로 규명해보고 싶었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의 건축을 제안해도 굳이 ‘업자 건축’을 원하는 사람들 속에서 좌절합니다. 귀국 후 한국이 가진 낭만성에 젖어 들었던 그는 이내 직접 시공까지 하는 디자인-빌트 방식을 채택하는 등 한국의 건축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스틸 스터드 공법, 방수 처리 없이 완벽 방수가 되는 콘크리트 지붕 등 그의 프로젝트들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새로운 시공 방법은 이상의 구현과 더불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시도된 것입니다. 그에게서 계획과 시공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완벽한 시공이라는 일방적인 사고방식도 없고, 계획과 시공을 시간적 선후로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지도 않으며, 시공도 계획의 한 부분이듯 계획도 시공의 한 부분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둘을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목표를 달성하려 합니다. 자칫 현실에 천착하여 건축의 이상을 잊었다는 평가가 있을 수 있으나,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경험과 감각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계획과 시공이 분리되지 않는 수용력 강한 성향은 고스란히 그의 건축을 이루는 토대가 됩니다.

이상을 추구하는 이에게 현실은 번거롭고 꿈을 좌절시키는 것들과의 대결로 가득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이에게 그것은 단지 조정해야 할 변수이며 일상일 뿐입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를 조율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모습이야말로 건축가로서의 그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는 건축의 절대성을 숭배하지 않지만 건축가로서의 덕목을 몸에 새겨 실천하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에서 좋은 건축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이들이 이방인일 수 있는데, 특히 이들은 지역 현실을 끌어안고 아래로부터 수준을 꾸준히 높여나갑니다. 생각과 설계도면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현장에서 매 순간 새로 태어나는 총체성을 만드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름을 역사에 새겨야 하는 이유는 한국건축에서 다음 세대의 이야기 중 한 부분이 바로 그곳에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건축가 조병수가 한국에서 겪어내며 고민했던 초기의 생각을 떠올려보면, 바로 그 지점이 ‘우리 건축’을 이야기해보기에 좋은 순간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상이 아침에 일어나기 전 잠자리에서 꿈꾸는 매일매일의 바람이라면 현실은 대문 밖을 나서면 존재하는 그때 그때의 상황인 것이며, 실질은 그 둘의 조화를 이루며 또 때로는 그 둘과는 전혀 무관하게 본능적으로 만들어지는 그 비좁은 영역이며 그 비좁은 영역이 바로 경제성과 예술성이 만나는 곳이 아닐까?10 ㅡ 조병수



  • 각주 :
  1.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자기 앞의 生』, Emile Ajar 지음, 용경식 옮김, 문학동네, 2003, p.314 ↩︎
  2. 「조병수의 건축과 절제의 윤리학」, 배형민, ⟪c3⟫, 1997.10, p.24 ↩︎
  3. 「객관적 상상력의 새로움 – 조병수 건축의 한 측면」, 박순관, ⟪c3⟫, 1998.5, p.28 ↩︎
  4. 「제21회 김수근문화상 심사평」, 김봉렬, 2011 ↩︎
  5. 「건축가의 새로운 항해」, 강혁, ⟪SPACE⟫, 2014.3, pp.44-46 ↩︎
  6. 『한국 현대건축 평전』, 박길룡, 공간서가, 2015, p.333 ↩︎
  7. 『한국 현대건축 평전』, 박길룡, 공간서가, 2015, p.361 ↩︎
  8. 『건축과 철학 : 건축과 탈식민주의 비판이론』, Felipe Hernandez 지음, 이종건 옮김, 시공문화사, 2010, p.145 ↩︎
  9. 『약한 건축』, 쿠마 켄고 지음, 임태희 옮김, 디자인하우스, 2009, p.154 ↩︎
  10. 「경제성과 예술성」, 조병수, ⟪건축문화⟫, 1996.12, p.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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