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콘덴서


소비에트 구성주의 이론의 이념에 의해 형성된 소셜 콘덴서1는 공간 역학에 대한 영향력으로 정의되는 건축 형식이다. 모이세이 긴즈부르크는 1928년 첫 OSA 그룹 회의의 개막 연설에서 “구성주의의 주요 목표는 … 이 시대의 소셜 콘덴서를 규정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개념과 가장 연관성 높은 건물은 모스크바에 있는 나르콤핀 빌딩으로, 1928년에 착공하여 1932년에 완공되었다.

소셜 콘덴서 개념의 핵심은 건축이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는 전제다. 소셜 콘덴서의 주요 목표는 사회적으로 평등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인식된 사회적 위계를 해체하기 위해 공공 공간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소셜 콘덴서”의 구축 형태를 만들기 위한 접근 방식에는 순환을 통해 공간 내에서 프로그램의 의도적인 중첩과 교차가 포함된다. 이 예에서는, 공유 순환 노드가 다양한 단체들의 충돌 영역을 형성한다. 이러한 충돌 영역은 흩어진 커뮤니티가 상호작용하도록 강요되는 합류 지점으로 디자인되었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생성하는 것이 소셜 콘덴서의 핵심 목표다.

OMA의 책 『콘텐트』에서는 소셜 콘덴서를 “활동의 역동적인 공존을 장려하고 그것들의 간섭을 통해 전례 없는 사건을 생성하기 위해 빈 지형 위에 프로그램적으로 레이어링을 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것들의 고유한 “간섭”을 통해, 레닌은 소셜 콘덴서가 다른 무엇보다 집단적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더 높은 소비에트 의식의 출현과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했다. 주로 혁명 이후 러시아와 혁명 이전 러시아를 차별화하려는 열망에 의해 주도된 소셜 콘덴서 양식은 새로운 소비에트 사상의 선봉에 있었고 개인화된 경험과 행동을 없애려는 레닌주의의 열망을 반영했다.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많은 담론을 지배했던 구성주의 이론은 이러한 이념적 개혁과 재창조의 의제를 추진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이상에 대한 건축적 알레고리로서 소셜 콘덴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특징

소셜 콘덴서의 디자인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공동체 활동을 이끄는 집단주의적 형태와 기능에 대한 헌신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의 소셜 콘덴서는 이러한 헌신을 반영하고 역사상 다른 건축 양식의 확산 속에서 식별할 수 있는 몇 가지 독특한 특성을 보여준다. 근본적으로, 소셜 콘덴서는 개인 편의시설의 폐지를 주장하며, 그 자리에 공동 시설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모이세이 긴즈부르크의 나르콤핀 빌딩은 사생활의 개념을 지속시키는 개별화된 건축 기능과 서비스 대신 “공동 식당, 체육관, 탁아소, 도서관”을 통합했다.

그렇지만, 소셜 콘덴서의 이러한 특성들은 소급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구성주의 디자이너들이 특정한 구조적 및 양식적 특징을 적극적으로 통합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건축 형태와 사회주의 목표에 대한 헌신이 그들을 이끈 것이다. 이는 구성주의가 포스트모던 불확정성과 일치함을 반영한다. 이렇듯 불확정적 건축을 이념적으로 공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셜 콘덴서는 몇 가지 규범화된 공간적 특징을 보여주었는데, 여기에는 구심성과 원심성 밀도 역학 간 상호작용,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간의 강력한 시너지, 직각 형태에 대한 의존, 불필요한 과잉을 피하기 위한 장식품이나 장식의 완전한 결여 등 몇 가지 성문화된 공간적 특징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호 연결된 공간이 특징인 소셜 콘덴서 형태는 몇 가지 다른 가시적인 특징을 보여주었다. 이 신념의 건축은 건물 내 개별화된 삶을 최소화하기 위해 칸막이 벽, 개인 주방, 욕실, 거실 같은 사적 편의시설을 배제하는 등 열린 공간을 중시했다. 이처럼, 소셜 콘덴서는 “개방된, 통풍이 잘 되는 디자인”으로 정의되었으며, 이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자유 공간을 채우도록 유도하여 건조환경 내에서 더 넓은 사회적 통합에 종속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상호 연결된 공간이 특징인 소셜 콘덴서 형태는 몇 가지 다른 가시적인 특징을 보여주었다. 이 신념의 건축은 건물 내 개별화된 삶을 최소화하기 위해 칸막이 벽, 개인 주방, 욕실, 거실 같은 사적 편의시설을 배제하는 등 열린 공간을 중시했다. 이처럼, 소셜 콘덴서는 “개방된, 통풍이 잘 되는 디자인”으로 정의되었으며, 이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자유 공간을 채우도록 유도하여 건조환경 내에서 그들의 개성을 더 넓은 사회적 통합에 종속시키는 역할을 했다.

좀 더 외부적인 관점에서, 소셜 콘덴서는 계획된 소셜 콘덴서와 우발적인 소셜 콘덴서의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계획된 소셜 콘덴서는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건설된 환경 내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려는 의도로 디자인 및 건설된 것을 말한다. 이러한 소셜 콘덴서의 현대적인 예로는 1963년에서 1977년 사이에 런던 남동부에 지어진 에일즈버리 에스테이트가 있으며, 이 건물은 명확히 구체화된 목적을 디자인의 최우선으로 삼았다. 이 목적에는 런던의 사회경제적 최하위 계층을 수용하는 동시에 방 배치를 표준화하고 공간 전체에서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며 자연 채광과 공기 흐름을 통합하려는 분명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발적인 소셜 콘덴서는 공간 및 대인관계 이론에 대한 지침 없이 건설되었지만 사람들이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게 된 후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Arry’s Bar는 처음에는 영국 클럽 밀월 FC의 축구 팬들을 수용하기 위해 디자인되었지만, 점차 사람들 사이의 급진적인 융합을 활성화하는 기능을 발휘하여 소셜 콘덴서의 주요 목적을 실현하게 되었다. 우발적인 소셜 콘덴서의 존재는 인식하고 소급ㆍ적용할 수 있는 명확하고 성문화된 특성들의 집합을 나타내며, 다양한 스타일에 의해 정의된 건축 경관 내에서 소셜 콘덴서를 식별할 수 있게 해준다.


맥락

소셜 콘덴서는 사회주의 독재라는 정치 영역 내에서 소비에트 구성주의 이론과 뿌리 깊은 연관이 있는 형태다. 모이세이 긴즈부르크와 OSA 그룹에 의해 개척된 이 건축 개념은 10월 혁명 이후 10년 동안 집단적 변혁의 의제를 제정하고자 했던 블라디미르 레닌의 이념과 행동에 의해 형성되었다. 1920년 ‘러시아 공산당 모스크바 구베르니야 회의’ 연설에서 레닌은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규정하는 격언을 발표했다:

공산주의는 소비에트 권력에 국가 전체의 전기화(電氣化)를 더한 것이다

“Communism is Soviet power plus the electrification of the whole country”[

이 말은 이후 레닌의 말을 건축에 외삽하여 추론한 소셜 콘덴서의 구성주의 현대 작가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시대에 스며든 전기에 대한 매력은 전류가 회로를 통해 흐르는 방식을 끊임없이 증가하고 심화하는 (당대에 변압기로 알려진) 전기 콘덴서의 기능을 우화적으로 모방한 스타일의 탄생을 이끌었다. 긴츠부르크는 전기화에 대한 레닌의 견해를 인간의 움직임 역학과 회로의 개념에 결합하여, 교훈적인 건축을 통해 “소비에트 시민들을 혁명적 코뮌주의자로 변화시키는” 소셜 콘덴서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소셜 콘덴서는 또한 10월 혁명 기념일에 맞춰 소비에트의 격변을 실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27년, 사회주의적 집단주의를 통해 새로운 소비에트의 영광으로의 전환을 나타내기 위해 혁명-이전 시대 건축으로부터 혁명-이후 시대 건축을 구별하는 것이 레닌주의의 필수 과제가 되었다. 따라서, 소셜 콘덴서는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아의 아방가르드 모더니즘을 혁명 이전 러시아의 모더니즘 및 당시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운영 방식과 구별하는 개념이 되었다. 이 개념은 주거용 건물, 공공 건물, 공공 공간, 더 넓은 도시 계획에 적용될 수 있었으며, 레닌은 도시 디자인을 통해 소비에트 대중을 활성화하고 사회주의적 생활 방식을 규정했다.


인간 행동에 대한 영향력


모이세이 긴즈부르크, OSA, 나르콤핀 빌딩


건축적 영향력


  1. ‘Social condenser’는 건축 분야 내에서 흔히 ‘사회적 응축기’로 번역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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