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콘덴서


나르콤핀 빌딩, 모이세이 긴즈부르크, 1927. via Wikimedia Commons

소비에트 구성주의 이론의 이념에 의해 형성된 소셜 콘덴서1는 공간 역학에 대한 영향력으로 정의되는 건축 형식이다. 모이세이 긴즈부르크는 1928년 첫 OSA 그룹 회의의 개막 연설에서 “구성주의의 주요 목표는 … 이 시대의 소셜 콘덴서를 규정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개념과 가장 연관성 높은 건물은 모스크바에 있는 나르콤핀 빌딩으로, 1928년에 착공하여 1932년에 완공되었다.

소셜 콘덴서 개념의 핵심은 건축이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는 전제다. 소셜 콘덴서의 주요 목표는 사회적으로 평등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인식된 사회적 위계를 해체하기 위해 공공 공간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소셜 콘덴서”의 구축 형태를 만들기 위한 접근 방식에는 순환을 통해 공간 내에서 프로그램의 의도적인 중첩과 교차가 포함된다. 이 예에서는, 공유 순환 노드가 다양한 단체들의 충돌 영역을 형성한다. 이러한 충돌 영역은 흩어진 커뮤니티가 상호작용하도록 강요되는 합류 지점으로 디자인되었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생성하는 것이 소셜 콘덴서의 핵심 목표다.

OMA의 책 『콘텐트』에서는 소셜 콘덴서를 “활동의 역동적인 공존을 장려하고 그것들의 간섭을 통해 전례 없는 사건을 생성하기 위해 빈 지형 위에 프로그램적으로 레이어링을 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것들의 고유한 “간섭”을 통해, 레닌은 소셜 콘덴서가 다른 무엇보다 집단적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더 높은 소비에트 의식의 출현과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했다. 주로 혁명 이후 러시아와 혁명 이전 러시아를 차별화하려는 열망에 의해 주도된 소셜 콘덴서 양식은 새로운 소비에트 사상의 선봉에 있었고 개인화된 경험과 행동을 없애려는 레닌주의의 열망을 반영했다.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많은 담론을 지배했던 구성주의 이론은 이러한 이념적 개혁과 재창조의 의제를 추진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이상에 대한 건축적 알레고리로서 소셜 콘덴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특징

소셜 콘덴서의 디자인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공동체 활동을 이끄는 집산주의적 형태와 기능에 대한 헌신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의 소셜 콘덴서는 이러한 헌신을 반영하고 역사상 다른 건축 양식의 확산 속에서 식별할 수 있는 몇 가지 독특한 특성을 보여준다. 근본적으로, 소셜 콘덴서는 개인 편의시설의 폐지를 주장하며, 그 자리에 공동 시설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모이세이 긴즈부르크의 나르콤핀 빌딩은 사생활의 개념을 지속시키는 개별화된 건축 기능과 서비스 대신 “공동 식당, 체육관, 탁아소, 도서관”을 통합했다.

그렇지만, 소셜 콘덴서의 이러한 특성들은 소급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구성주의 디자이너들이 특정한 구조적 및 양식적 특징을 적극적으로 통합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건축 형태와 사회주의 목표에 대한 헌신이 그들을 이끈 것이다. 이는 구성주의가 포스트모던 불확정성과 일치함을 반영한다. 이렇듯 불확정적 건축을 이념적으로 공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셜 콘덴서는 몇 가지 규범화된 공간적 특징을 보여주었는데, 여기에는 구심성과 원심성 밀도 역학 간 상호작용,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간의 강력한 시너지, 직각 형태에 대한 의존, 불필요한 과잉을 피하기 위한 장식품이나 장식의 완전한 결여 등 몇 가지 성문화된 공간적 특징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호 연결된 공간이 특징인 소셜 콘덴서 형태는 몇 가지 다른 가시적인 특징을 보여주었다. 이 신념의 건축은 건물 내 개별화된 삶을 최소화하기 위해 칸막이 벽, 개인 주방, 욕실, 거실 같은 사적 편의시설을 배제하는 등 열린 공간을 중시했다. 이처럼, 소셜 콘덴서는 “개방된, 통풍이 잘 되는 디자인”으로 정의되었으며, 이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자유 공간을 채우도록 유도하여 건조환경 내에서 더 넓은 사회적 통합에 종속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상호 연결된 공간이 특징인 소셜 콘덴서 형태는 몇 가지 다른 가시적인 특징을 보여주었다. 이 신념의 건축은 건물 내 개별화된 삶을 최소화하기 위해 칸막이 벽, 개인 주방, 욕실, 거실 같은 사적 편의시설을 배제하는 등 열린 공간을 중시했다. 이처럼, 소셜 콘덴서는 “개방된, 통풍이 잘 되는 디자인”으로 정의되었으며, 이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자유 공간을 채우도록 유도하여 건조환경 내에서 그들의 개성을 더 넓은 사회적 통합에 종속시키는 역할을 했다.

에일즈버리 에스테이트, 2015. via Wikimedia Commons

좀 더 외부적인 관점에서, 소셜 콘덴서는 계획된 소셜 콘덴서와 우발적인 소셜 콘덴서의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계획된 소셜 콘덴서는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건설된 환경 내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려는 의도로 디자인 및 건설된 것을 말한다. 이러한 소셜 콘덴서의 현대적인 예로는 1963년에서 1977년 사이에 런던 남동부에 지어진 에일즈버리 에스테이트가 있으며, 이 건물은 명확히 구체화된 목적을 디자인의 최우선으로 삼았다. 이 목적에는 런던의 사회경제적 최하위 계층을 수용하는 동시에 방 배치를 표준화하고 공간 전체에서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며 자연 채광과 공기 흐름을 통합하려는 분명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발적인 소셜 콘덴서는 공간 및 대인관계 이론에 대한 지침 없이 건설되었지만 사람들이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게 된 후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Arry’s Bar는 처음에는 영국 클럽 밀월 FC의 축구 팬들을 수용하기 위해 디자인되었지만, 점차 사람들 사이의 급진적인 융합을 활성화하는 기능을 발휘하여 소셜 콘덴서의 주요 목적을 실현하게 되었다. 우발적인 소셜 콘덴서의 존재는 인식하고 소급ㆍ적용할 수 있는 명확하고 성문화된 특성들의 집합을 나타내며, 다양한 스타일에 의해 정의된 건축 경관 내에서 소셜 콘덴서를 식별할 수 있게 해준다.


맥락

소셜 콘덴서는 사회주의 독재라는 정치 영역 내에서 소비에트 구성주의 이론과 뿌리 깊은 연관이 있는 형태다. 모이세이 긴즈부르크와 OSA 그룹에 의해 개척된 이 건축 개념은 10월 혁명 이후 10년 동안 집단적 변혁의 의제를 제정하고자 했던 블라디미르 레닌의 이념과 행동에 의해 형성되었다. 1920년 ‘러시아 공산당 모스크바 구베르니야 회의’ 연설에서 레닌은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규정하는 격언을 발표했다:

공산주의는 소비에트 권력에 국가 전체의 전기화(電氣化)를 더한 것이다

이 말은 이후 레닌의 말을 건축에 외삽하여 추론한 소셜 콘덴서의 구성주의 현대 작가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시대에 스며든 전기에 대한 매력은 전류가 회로를 통해 흐르는 방식을 끊임없이 증가하고 심화하는 (당대에 변압기로 알려진) 전기 콘덴서의 기능을 우화적으로 모방한 스타일의 탄생을 이끌었다. 긴츠부르크는 전기화에 대한 레닌의 견해를 인간의 움직임 역학과 회로의 개념에 결합하여, 교훈적인 건축을 통해 “소비에트 시민들을 혁명적 코뮌주의자로 변화시키는” 소셜 콘덴서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소셜 콘덴서는 또한 10월 혁명 기념일에 맞춰 소비에트의 격변을 실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27년, 사회주의적 집산주의를 통해 새로운 소비에트의 영광으로의 전환을 나타내기 위해 혁명-이전 시대 건축으로부터 혁명-이후 시대 건축을 구별하는 것이 레닌주의의 필수 과제가 되었다. 따라서, 소셜 콘덴서는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아의 아방가르드 모더니즘을 혁명 이전 러시아의 모더니즘 및 당시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운영 방식과 구별하는 개념이 되었다. 이 개념은 주거용 건물, 공공 건물, 공공 공간, 더 넓은 도시 계획에 적용될 수 있었으며, 레닌은 도시 디자인을 통해 소비에트 대중을 활성화하고 사회주의적 생활 방식을 규정했다.


인간 행동에 대한 영향력

레닌주의의 영역 내에서, 소셜 콘덴서는 인간 경험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인간 행동을 명시적으로 조절하는 공간 형태를 활용했다. 그것은 사회가 기능하는 방식을 재정의하기 위해 인간 존재의 심리적, 이념적, 행동적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교육적 측면과 점점 더 밀접하게 얽히게 되었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감각을 최우선시했던 (구성주의의 전신인) 절대주의의 상충하는 개념들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했다. 그러므로, 소셜 콘덴서는 말이나 글로 된 지시를 넘어, 도시 환경의 건축 구조에 그것을 내재화시킴으로써 인간 상호작용 방식에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변화를 실현하려 했다.

이와 유사하게, 소셜 콘덴서는 사회계층혼합의 촉매제가 되어,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계급 체계를 해체하고 엄격한 시민 계층화를 없애는 데 기여했다. 결과적으로, 소셜 콘덴서는 건축을 통해 지식인, 노동자 계급, 연예인 등 다양한 계층이 함께 모이는 계급 시너지의 장이 되었다. 디자인을 통해 계급과 성별의 오래된 위계를 해체하려는 급진적인 사회주의 의제 아래, 사회적 콘덴서가 20세기 초 여성의 가정생활과 관련된 사적 편의시설을 제거함으로써 여성들도 더 큰 자유를 얻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소셜 콘덴서는 혁명 이후의 문화적 격변 속에서 인간 경험을 집단적 참여로 이끌어가며 새롭게 등장한 소비에트 생활 방식을 발전시키고 체계화하려고 했다. 구성주의자들은 소셜 콘덴서 형태를 통해 공유된 삶을 강요함으로써 인간의 태도와 신념이 집단적 사고에 의해 정의되는 선진 사회에 대한 레닌의 비전을 개척하고자 했다. 이 비전을 발전시키면서, 소비에트 의식이 간결하고 집단적인 형태로 농축되어 새로운 러시아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레닌은 소셜 콘덴서가 사회 운동과 가정 개혁의 촉매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이러한 미시적 차원에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소비에트 연방 내에서 점진적인 집단적 각성을 구상했다.


모이세이 긴즈부르크, OSA, 나르콤핀 빌딩

소셜 콘덴서의 선구자, 모이세이 긴즈부르크는 현대건축가기구(OSA)를 설립함으로써 구성주의의 건축 이상을 발전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긴즈부르크는 개인적으로 구성주의의 교리를 발전시키고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구성주의자들이 지향했던 모든 것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 그의 1924년 출간 저서인 『양식과 시대』에서 그 예가 잘 드러난다. 이 책에서 긴즈부르크는 소셜 콘덴서를 둘러싼 자신의 이론을 공식화하는데 도움이 된 몇 가지 핵심 개념을 설명한다. 이러한 개념에는 시간에 따른 건축의 변화 가능성, 그레코-이탈릭 고전 사상, 구성주의 등이 포함됐으며, 이후 그는 건축 개념으로서 소셜 콘덴서를 발전시키는 데 영향을 미칠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탐구로 나아갔다.

나르콤핀 빌딩, 2020. via Wikimedia Commons

1925년 OSA의 결성은 긴즈부르크가 같은 생각을 가진 집중적인 건축가들로 이루어진 긴밀한 그룹과 함께 작업함으로써 자신의 구성주의적 희망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그룹은 소비에트 연방에서 리하체프 문화의 전당, 여러 아파트 블록, Mostorg 백화점 등 수많은 구성주의 건축물을 설계하고 시공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렇지만, OSA와 긴즈부르크가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모스크바에 있는 나르콤핀 빌딩 때문이었다.

나르콤핀 빌딩은 사회주의적 삶의 방식을 장려하는 데 헌신한 소셜 콘덴서의 양식적 전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공동 주방, 식당, 공용 욕실까지 갖춘 54개의 유닛으로 구성된 이 건물은 직교 디자인, 반복적인 실 계획, 차분한 색상 디자인으로 정의되었다. 부가적으로, 개인 시설의 제거로 인해 각 방이 작아지면서 더 많은 유닛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1920년대와 1930년대 모스크바의 인구 밀집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및 개방적이고 공유 가능한 편의 시설을 통해 집단적 상호작용을 표방하고 사회주의 생활 방식에 영감을 주고 촉진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나르콤핀 빌딩을 위한 긴즈부르크의 건축적 실천을 정의하는 이차적인 동기가 있었다. 그는 새로운 소비에트 정신에 대한 레닌의 계획을 실현하는 것 외에도, “정서적으로 삶을 완화하고, 주민들이 생활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으로 휴식과 여유를 제공하려” 했다. 따라서, 긴즈부르크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소비에트 프롤레타리아들 사이에 안도감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편안한 집단 공간을 통해 세세한 부분까지 즐기는 것을 장려할 수 있었다.


건축적 영향력

전후, 소셜 콘덴서는 직각 형태와 기능적 유닛 디자인을 통해 유럽의 소셜 하우징에 영향을 미쳤으며, 전쟁 이후 집산주의를 고취할 목적과 함께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디자인한 르코르뷔지에 등 건축가들에 의해 외삽추정되었다.

소셜 콘덴서는 현대 건축가들이 보다 파편적인 구조를 위해 구성주의 양식의 결정론을 풀어내려고 노력함에 따라 해체주의 건축에도 대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소셜 콘덴서가 사려 깊은 디자인을 통해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려 했던 반면, 오늘날의 해체주의 건물은 “형태로부터 의미를 제거하는 단순하고 무작위적인 형태학적 제스처”라는 단 하나의 디자인 전술만을 사용한다. 이는 집산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디자인된 소비에트 소셜 콘덴서의 기능적 본성과 상반되는 것이다.

소셜 콘덴서 형태에서 벗어난 이러한 포스트모던적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건축가들이 자신의 작업에 긴즈부르크의 아이디어의 원칙을 전파하거나 전용하는 건축가들이 있어, 그의 소비에트 비전이 영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틸뷔르흐에 위치한 로칼 공공도서관은 물리적 공간에서 사람들 간의 다각적인 상호작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쓸모없는 철제 기관차 창고의 용도를 변경하고자 했던 건축가 집단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활성하고자 하는 이러한 열망이 그것을 소셜 콘덴서로 분류하도록 이끈다.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2019 월드아키텍처페스티벌에서 로칼 공공 도서관은 ‘올해의 세계 건축물’로 선정되었다.



  1. ‘Social condenser’는 건축 분야 내에서 흔히 ‘사회적 응축기’로 번역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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