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고전주의


스톡홀름 공공 도서관, 군나르 아스플룬드, 1920-28. via Wikimedia Commons

북유럽 고전주의(노르딕 클래시시즘)는 1910년에서 1930년 사이에 북유럽 국가(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에서 잠시 꽃을 피웠던 건축 양식이다.

1980년대에 (여러 학술 연구와 공개 전시회를 통해) 북유럽 고전주의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기 전까지, 북유럽 고전주의는 훨씬 더 잘 알려진 두 건축 운동인 민족낭만주의 또는 (종종 아르누보와 동등하거나 유사하다고 여겨지는) 유겐트스틸과 기능주의(일명 모더니즘) 사이의 단순한 막간극으로 간주되었다.


역사

코펜하겐 경찰 본부, 핵 캄프만, 1924. via Wikimedia Commons

북유럽 고전주의의 발전은 고립된 현상이 아니라 북유럽 국가에 이미 존재하는 고전주의 전통과 독일어권 문화에서 추구된 새로운 사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따라서 북유럽 고전주의는 토착 건축(북유럽, 이탈리아 및 독일)과 신고전주의의 직간접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독일공작연맹 ㅡ 특히 1914년 전시 ㅡ 으로부터 비롯된 모더니즘의 초기 발흥과 1920년대 중반 르코르뷔지에의 이론에서 등장한 에스프리 누보(새로운 정신)의 영향을 조합한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모더니즘의 영향은 단순한 미학을 넘어섰다: 도시화는 현대적인 건설 기술 그리고 건물 및 도시 계획 모두에 대한 규제의 도입, 더 나아가 좌파로의 정치 이념 변화를 초래한 사회 세력의 부상으로 이어져 북유럽 복지 국가와 병원(예: 스톡홀름 서부에 있는 베콤베리아 병원[1927~35; 칼 베스트만]) 및 학교(예: 스톡홀름에 있는 프리드헴스플란 학교[1925~27; 게오르그 A. 닐손])  같은 공공 건물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북유럽 고전주의는 여러 중요한 공공 건물에 사용되었지만, 일반적으로 저비용 주택(예: 헬싱키에 있는 푸-캐퓔래 가든 타운[1920~25; 마르티 밸리칸가스])과 주택 건축(예: 벼락부자를 위한 감당가능한 감각의 양식)을 위한 모델로도 적용되었다.

1930년은 군나르 아스플룬드(1885~1940)와 시구르드 레베렌츠(1885~1975)가 주로 디자인한 ‘스톡홀름 박람회’가 열렸던 해로, 현대 사회의 모델로 보다 순수한 모더니즘을 선보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북유럽 고전주의의 종착점으로 간주된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스톡홀름에 있는 외스트베리 해양 박물관(1931~34)을 비롯한 주요 건물은 계속해서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주목할 만한 건축가들

노르웨이 헤우게순 시청사, 구돌프 블락스타드 & 헤르만 문테-카스, 1922-31. via Wikimedia Commons

어떤 건축가들은 민족낭만주의 스타일이 등장했을 때 이미 그들 경력의 정점에 도달했지만, 그들의 후기 작업은 북유럽 고전주의 양식이었고(예: 카를 베스트만), 다른 건축가들의 경력은 북유럽 고전주의로 정점을 찍은(예: 이바르 텡봄, 라그나르 외스트베리) 반면 나중에 모더니즘 건축가로서 훨씬 더 큰 의의를 달성했다(예: 아르네 야콥센, 알바 알토, 스벤 마르셸리우스). 그렇지만, 두 시대 모두에서 가장 큰 업적을 달성한 두 인물은 스웨덴 건축가 군나르 아스플룬드와 시구르드 레베렌츠였다.

덴마크: 케이 피스커, 해크 캠프만, 카이 고틀로프, 이바르 벤트센, 포울 바우만, 포울 홀소, 에드바르드 톰센, 토마스 하부닝, 홀게르 야콥센, 카레 클린트, 아르네 야콥센, 카를 페테르센, 오게 라픈, 스틴 아일러 라스무센, 스벤 리솜, 프리츠 슐레겔.

핀란드: 군나르 타우헤르, 우노 울베르, 마르티 밸리칸가스, 요한 지그프리드 시렌, 알바 알토, 파울리 E. 블롬슈테트, 엘시 보그, 에리크 브릭만, 힐딩 에켈룬드, 헤이키 시이코넨, 오이바 칼리오.

노르웨이: 라르스 베커, 로런츠 하보 리, 스베레 페데르센, 니콜라이 비어, 핀 버너, 하랄 할스, 헤르만 문데-카스, 구돌프 블랙스태드, 핀 브린, 옌스 둥케르, 요한 엘레프슨.

스웨덴: 라그나르 외스트베리, 군나르 아스플룬드, 칼 베스트만, 시그루드 레베렌츠, 칼 버그스텐, 시그프리드 에릭손, 토르벤 그루트, 라그나르 홀스, 시릴루스 요한손, 에리크 랄레스테트, 군나르 레헤, 스벤 마르셸리우스, 군나르 모르싱, 예오르지 닐손, 투레 뤼베리, 알빈 스타크, 에스실 순달, 라스 이스라엘 발만, 스벤 발란데르, 하콘 알베르, 이바르 텡봄.

이 건축가들이 국가별로 나열되어 있긴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북유럽 국가들 사이에 활발한 문화 교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많은 건축가들이 둘 이상의 국가에서 일했음), 컨설턴트에서 부르주아지, 기반시설, 주거지, 공공 서비스와 관련된 도시 계획 설계자에 이르기까지 건축가의 활동 영역도 크게 발전했다. 스웨덴 역사가 헨릭 O. 안데르손이 말한 것처럼, 이는 급진적 아방가르드가 아닌 민주주의의 건축이었다. 더욱이, 핀란드를 제외한 다른 북유럽 국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적인 문화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다른 운동과의 관계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 군나르 아스플룬드 & 시구르드 레베렌츠, 1917-40. via Wikimedia Commons

포스트모더니즘이 한창이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비평가, 역사가, 건축학 교사들이 마이클 그레이브스, 레온 크리에, 로버트 스턴 같은 건축가들의 건축에 대한 역사적 선례를 찾던 시기에 북유럽 고전주의, 특히 그것의 가장 고전주의적 형태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북유럽 고전주의는 특히 스톡홀름에 있는 군나르 아스플룬드의 〈스칸디아 시네마〉(1924), 〈리스테르 지구 정부 청사〉(1917~21), 유르스홀름에 있는 〈빌라 스넬만〉(1917~18), 〈스톡홀름 공공 도서관〉(1920~28) 같은 중요한 건물과 아스플룬드와 시구르드 레베렌츠가 설계한 스톡홀름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국립묘지공원)의 경관 및 건물(1917~40)에서 그 선례를 제공했다.

건축 양식과 관련해서, 북유럽 고전주의의 부상을 설명하는 몇 가지 선례 또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예를 들어 대칭, 디테일링, 비례에 대한 고려 등 절대주의 건축 ㅡ 즉, 스웨덴과 덴마크 군주제의 권력을 상징하는 고전주의적 건축 상징 ㅡ 에서 토착 건축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고전주의적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19세기 전반에 걸쳐 고전주의가 더욱 단순화되는 데 기여한 여러 요인이 있었다. 19세기 초 파리의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J.N.L. 뒤랑(1760~1834)의 가르침은 고전주의의 언어와 건설 기법을 합리화하면서 단순한 첨가 구성을 허용하는 시도를 했다. 뒤랑의 가르침은 확산되어, 프리드리히 길리(1772~1800)와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1781~1841)의 작업과 함께 낭만적 고전주의의 형태로 독일 문화에 들어왔다. 당시 학자들은 폼페이의 유적을 발굴하고 있었고, 로마 건축에서 밝은 색의 사용을 발견했다 – 이는 르네상스 시대에 다소 잊혀진 측면이었지만, 그리스와 이집트도 재발견되었다. 이러한 측면은 신고전주의에 통합되어 북유럽 고전주의로 이어졌다(예: M.G. 빈데스뵐에 의해 1839~48년에 코펜하겐에 지어진 〈투르발슨 박물관〉은 아스플룬드의 스톡홀름 공공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이집트 모티브를 통합시킨다).

191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지어진 독일대사관 건물. 스트립트 클래시시즘의 가장 초기 사례로 간주된다. via Wikimedia Commons

고려되어야 할 ‘반응-계’도 있다. 아르누보와 민족낭만주의는 덴마크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은 반면,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에서는 민족낭만주의의 반응도 강했다. 신고전주의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통해 핀란드에 보편적 언어로 도착했지만, 19세기 말에는 러시아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대표하게 되었다. 또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훗날 스트립트 클래시시즘(헐벗은 고전주의)으로 불리는 스타일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핀란드와 노르웨이에서 정치적 독립의 움직임이 나타나자 민족주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아르누보의 지역적 변형인) 견고하고 민족적인 낭만주의 건축이 유행했다. 따라서 북유럽 고전주의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스타일과 절충주의 전반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편주의, 국제주의, 단순화를 향한 움직임이었다.

북유럽 고전주의 양식으로 활동한 많은 건축가들이 이탈리아 북부를 순례하며 이탈리아 토착 건축을 연구했다. 당시 북유럽 국가들과 독일은 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의 아르누보 비평가, 특히 (영국의 미술과 공예 운동의 발기인이었으며 1907년 독일공작연맹을 설립한) 헤르만 무테지우스(1861~1927)와 파울 슐체 나움부르크(1869~1949), 뿐만 아니라 나움부르크의 제자인 하인리히 테세노(1876~1950)와 페터 베렌스(1868~1940)도 중요한 출처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북유럽 고전주의의 사상은 북유럽 국가들에서 모더니즘 발전을 위한 기반 중 하나가 되었다. 토착(일반 주택 양식)과 모더니즘 사이에 연속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고전주의의 다섯 가지 기본 원칙을 뒤집는 것으로 간주된 르코르뷔지에와 그의 건축을 위한 다섯 요점을 시작으로 모더니즘의 부상에 대한 기존의 역사적 의견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북유럽 고전주의로부터 순수한 기능주의로의 이동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알바 알토의 〈비푸리 도서관〉(1927~35) 디자인은 1927년 (군나르 아스플룬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최초의 건축 설계경기 제안에서 8년 후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아 순수주의 모더니즘 스타일로 완성된 엄격한 기능주의 건물로 크게 변화한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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