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 건축


메소포타미아 건축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수계(水系)(일명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고대 건축으로, 여러 개별적인 문화를 포함하며 최초의 영구적인 구조물이 건설된 기원전 1만 년부터 기원전 6백 년까지의 기간에 걸쳐 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의 건축적 업적 중에는 도시계획, 안뜰집, 지구라트의 개발이 있다. 메소포타미아에는 건축업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서기관이 정부, 귀족 또는 왕족을 위해 초안을 작성하고 건설을 관리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건축에 대한 연구는 이용 가능한 고고학적 증거, 건물의 회화적 표현, 그리고 건축 관행에 관한 문헌에 기초하고 있다. 아키발트 세이스(1845~1933)에 따르면, 우르크 시대의 원시적인 상형문자는 다음 내용을 시사한다. “돌은 드물었지만, 이미 블록과 인장으로 잘려 있었다. 벽돌은 일반적인 건축 자재였으며, 벽돌로 도시, 요새, 사원, 주택이 건설되었다. 도시는 탑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인공 플랫폼 위에 세워졌으며, 주택 또한 탑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문은 경첩으로 달려 있어 열쇠 같은 것으로 열 수 있었고, 도시의 성 문은 더 큰 규모로 되어 있었으며 이중 구조였던 것으로 보인다. … 새처럼 날개가 있는 악마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집의 주춧돌 – 이라기보다는 벽돌 – 은 그 아래에 특정한 물건들을 넣어 봉헌되었다.”

학술 문헌은 대개 사원, 궁전, 성벽과 성문 그리고 기타 기념비적인 건물들의 건축에 중점을 두지만, 간혹 주거용 건축 작업도 발견된다. 고고학적 지표조사를 통해 초기 메소포타미아 도시의 도시형태도 연구할 수 있었다.


건물 재료

수메르 벽돌은 때때로 역청이 사용되기도 했지만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크게 달라진 벽돌 스타일은 시대별로 분류된다.

  • 팟슨(햇볕에 말린 원기둥 형태의 흙벽돌) 80 × 40 × 15 cm : 우루크 후기 (기원전 3600~3200년)
  • 리므헨(일건연와, 햇볕에 말린 흙벽돌) 16 × 16 cm : 우루크 후기 (기원전 3600~3200년)
  • 플라노-컨벡스(한쪽면이 반달형인 벽돌) 10x19x34 cm : 초기 왕조 시대 (기원전 3100~2300년)

메소포타미아 벽돌공들은 다소 불안정한 둥근 벽돌을 선호했기 때문에, 몇 줄 간격으로 벽돌을 수직으로 쌓아 올렸다. 플라노-컨벡스 벽돌의 장점은 제조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표면이 불규칙하여 다른 벽돌 유형의 매끄러운 표면보다 마감 석고 코트가 더 잘 유지된다는 점이다.

벽돌은 햇볕에 단단하게 소성시켰다. 이런 종류의 벽돌은 오븐에서 구운 벽돌보다 내구성이 훨씬 떨어지기 때문에 결국 건물은 악화되었다. 건물들은 주기적으로 파괴되고, 평평해지고, 같은 자리에 재건되었다. 이 계획된 구조적 생애주기는 점차적으로 도시의 레벨을 높였고, 그래서 그들은 주변 평야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마운드는 텔(tell)로 알려져 있으며, 고대 근동 전역에서 발견된다. 관공서 건물들은 색을 입힌 돌의 원뿔, 테라코타 패널, 점토 못을 어도비 벽돌에 박아서 건물의 파사드를 장식하는 보호 덮개를 만들어 부패를 늦췄다. 특히 레바논에서 온 삼나무, 아라비아에서 온 섬록암, 인도에서 온 청금석 같은 수입 건축 자재를 귀하게 여겼다.

바빌로니아 사원은 조악한 벽돌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물로, 부벽에 의해 지지되고, 빗물은 배수구로 흘러나간다. 우르에 있는 배수구 중 하나는 납으로 만들어졌다. 벽돌의 사용은 벽기둥(필라스터)과 기둥, 프레스코화와 에나멜 타일의 초기 개발로 이어졌다. 벽은 화려하게 채색되었고, 때로는 타일 뿐 아니라 아연이나 금으로 도금되었다. 횃불용으로, 칠한 테라코타 콘(원뿔)도 석고 안에 박혀 있었다. 바빌로니아 건축을 모방한 아시리아는 돌이 나라의 자연 건축자재였을 때에도 벽돌로 궁전과 사원을 지었는데 ㅡ 바빌로니아의 습한 토양에는 필요했지만 북쪽에서는 거의 필요하지 않은 벽돌 기단을 충실히 보존했다.

장식

그렇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후기 아시리아 건축가들은 바빌로니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벽돌뿐만 아니라 돌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시리아 궁전의 벽은 칼데아(바빌로니아 남부 지방의 고대 왕국)에서처럼 칠해지는 대신 조각과 채색된 석판이 늘어서 있었다. 이러한 부조(상)의 예술에서 활달하지만 단순한 아슈르나시르팔 2세 시대, 신중하면서 현실적인 사르곤 2세 시대, 세련되지만 대담함을 추구한 아슈르바니팔 시대의 세 단계를 추적할 수 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부조 대신에 둥근 입체 형상을 더 많이 사용했는데, 가장 초기의 사례로는 다소 서툴지만 현실적인 기르수(Girsu)의 조각상들이 있다. 돌이 부족한 바빌로니아는 조약돌 하나하나를 귀하게 다루었고, 높은 완성도의 보석 세공 기술을 이끌어냈다. 아카드의 사르곤 시대에 만들어진 두 개의 원통-인장이 그 종류 중 가장 훌륭한 사례다.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초기 야금술의 첫 번째 주목할만한 표본 중 하나는 엔테메나의 은제 화병이다. 후기 시대에는 귀걸이와 금팔찌 같은 장신구 제조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구리 역시 숙련된 솜씨로 가공되었으며, 실제로 바빌로니아는 구리 가공의 원조였을 가능성이 있다.

아시리아 사람들은 일찍부터 자수와 양탄자로 유명했다. 아시리아 도자기의 형태는 우아하며, 니네베 궁전에서 발견된 유리와 같은 (경질의) 도자기는 이집트 모델에서 파생된 것이다. 투명한 유리는 사르곤 통치 시기에 처음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돌, 점토, 유리는 꽃병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으며, 이집트 초기 왕조 시대와 비슷한 단단한 돌 화병이 기르수에서 출토되었다.


도시계획

수메르는 도시 자체를 건설하고 진보된 형태로 건설한 최초의 사회였다. 우르크(이라크 남부 유프라테스 강 부근에 있었던 고대 수메르의 도시)의 성벽, 거리, 시장, 사원, 정원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는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이 업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우르크는 식민지 개척과 정복을 통해 서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간 도시 문화의 표본이 되었으며, 사회가 더 크고 더 정교해짐에 따라 더욱 확산되었다.

도시 건설은 신석기 혁명에서 시작된 유행의 최종 산물이었다. 도시의 성장은 부분적으로는 계획되었고 부분적으로는 유기적으로 이루어졌다. 계획은 성벽, 높은 사원 지구, 항구의 주요 운하, 중심가 등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주거 및 상업 공간의 보다 세밀한 구조는 계획된 지역에 의해 부과된 공간적 한계에 대한 경제적 힘의 반작용으로 규칙적인 특징을 가진 불규칙한 디자인을 초래한다. 수메르인들은 부동산 거래를 기록했기 때문에, 도시성장패턴, 밀도, 자산가치 및 기타 지표의 많은 부분을 설형문자 텍스트 소스에서 재구성할 수 있다. 전형적인 도시는 공간을 주거공간, 복합용도공간, 상업공간, 시민 공간으로 구분했다. 주거 지역은 직업별로 그룹화되었다. 도시의 중심에는 항상 지리적 중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높은 사원 단지가 있었다. 이 높은 사원은 일반적으로 도시의 설립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도시 형태가 성장하는 핵(중심지)이었다. 성문에 인접한 지역은 특별한 종교적, 경제적 기능을 담당했다.

이 도시는 항상 작은 촌락을 포함한 관개 농경지 벨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도로와 운하의 네트워크가 도시와 이 땅을 연결시켰다. 교통망은 넓은 행렬 도로(아카드어: sūqu ilāni u šarri), 공공 통과 도로(아카드어: sūqu nišī), 개인 소유 막다른 골목(Akkadian:mūṣû)의 3단으로 조직되었다. 블록을 규정하는 공공 도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의 변하지 않는 반면, 막다른 골목은 훨씬 더 유동적이었다. 현재의 추정치에 따르면 도시 면적의 10%가 도로, 90%가 건물이었다. 그렇지만, 운하가 도로보다 더 중요한 교통 수단이었다.


주택

시공

디자인

가구


궁전


사원

지구라트


아시리아 건물, 요새, 사원 디자인


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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