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건축


말하는 건축(프랑스어 발음 “아ㅎ시텍튀르 파ㅎ렁”)은 자신의 기능이나 정체성을 설명하는 건축이다. 이 문구는 원래 클로드 니콜라 르두(1736-1806)와 관련이 있으며, 혁명 시대의 파리에서 교육 받은 다른 건축가인 에티엔-루이 불레(1728-1799) 및 장-자크 르크(1757-1826)에게까지 확장되었다. 에밀 카우프만(1891-1953)은 1852년에 《마가쟁 피토레스크》를 위해 작성되었으며 「프랑스의 건축 연구」라는 제목의 르두 작업을 주제로 한 익명의 비판적 에세이에서 이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을 추적했다.

장자크 르크가 자신의 출간되지 않은 『Architecture Civile 원고에 그린 “대지의 신전”. via Wikimedia Commons
장자크 르크의 프로젝트, 사냥터의 문. via Wikimedia Commons

임시 오더

보다 실용적인 적용에서, 신고전주의의 자극 아래 발명된 임시 오더는, 말하는 건축의 사례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콤포지트(합성) 오더를 기반으로 하고 주두의 디자인만 차이가 있는 몇 가지 오더들이 특정 경우의 영감 아래 발명되었지만, 다시 사용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임시어(그 자리에서만 쓰는 말)’에서 유추하여 “임시 오더”라고 할 수 있다.

1762년, 제임스 애덤(1732-1794)은 문장(紋章)의 사자와 유니콘을 특징으로 하는 영국식 오더를 발명했다. 1789년, 조지 댄스(1741-1825)는 런던의 폴 몰에 있는 보이델 셰익스피어 갤러리를 위해 암모나이트 화석의 형태로 볼류트를 대체하는 이오니아식의 변종인 암모나이트 오더를 발명했다. 미국에서는, 워싱턴 DC에 있는 국회의사당 건물의 건축가인 벤자민 헨리 라트로브(1764-1820)가 일련의 미국 오더를 디자인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국회의사당 건물의 베스티뷸(현관 [대기실])에서 주세페 프란조니에 의해 제작된 옥수숫대와 껍질로 대체한 오더다.

주세페 프란조니에 의해 제작된 미국 국회의사당 건물의 옥수수 오더. via Wikimedia Commons

보자르

다소 절제된 형태의 알레고리적 조각과 명문(銘文; 새겨진 글)으로 표현된 동일한 개념이 보자르 구조물의 특징 중 하나가 되었고, 그 결과 미국 공공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 가지 좋은 사례는 워렌과 웨트모어 팀이 디자인한 맨해튼 44번가에 있는 1901 뉴욕 요트 클럽 건물이다. 이 건물의 전면 창문 세 개는 초기 네덜란드 선박의 선미를 본떠서 만들었고, 파사드에는 항해를 테마로 한 조각품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같은 팀이 디자인한 1912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거대한 우화적 조각 그룹 형태의 스스로-설명하는 건축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구조에 내재된 모양, 표면, 계단, 아치, 경사로, 통로 등이 방문객이 건물에서 자신의 방향을 잡고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언어를 구성하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다.

같은 해, 맥킴, 미드 & 화이트는 헤로도토스(그리스 역사가, c.484~c.425 BC)에서 가져온 유명한 명문으로 팔리 우체국 빌딩을 디자인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뜨거우나, 어두우나, 집배원들은 맡겨진 배달업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처리한다.”

팔리 우체국 빌딩 디자인에 사용된 명문. 이는 우체국의 모토가 아니라 건축회사에서 건물에 추가한 것이다. via Wikimedia Commons

워싱턴 DC의 공공 건축은 가장 시적이고 가장 장황한 명문을 제공한다. 하버드 총장 찰스 윌리엄 엘리엇(1834~1926)이 명문 프로그램을 개발한 워싱턴 유니언 스테이션(1908)은 보자르 건축가 다니엘 번햄(1846~1912)이 디자인을 담당했다. 정문 위에는 이 찬가가 새겨져 있다: “불: 인간이 다양한 기후에서 살 수 있고, 많은 음식을 사용하고, 자연의 힘으로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위대한 발견. 전기: 빛과 힘의 운반자, 시간과 공간을 삼키는 자, 육지와 바다에서 인간의 말을 전달하는 자, 그 자체로는 알 수 없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종.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 두었다.”


신고전주의

1930년대에 (미국) 수도의 신고전주의 건물 붐의 일부였던 1932년 상무부 건물에는,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예가 있다: “우리 선조들을 인도한 영감은 무엇보다도 조국의 단결을 확보하도록 이끌었다. 우리는 피통치자의 동의에 의한 정부 및 미국의 정치 질서에 의지하며, 이는 개인의 이니셔티브(주도성)를 촉진하는 조직을 장려하는 국가 에너지의 모든 요소들을 하나로 묶는 애국적 이상의 표현이다. 이 건물 내에는 국민의 삶을 지탱하고, 문제를 명확히 하고, 자원을 조정하고, 시민의 책임을 줄이지 않으면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들이 설립된다. 그것들은 국민을 섬기면서 설립자의 목적과 미래의 가장 큰 희망인 국가의 청렴 및 복지에 대한 지방 행정을 통해 헌신하고 있다.”

그러한 명문 외에도, 미국에서 ‘말하는 건축’의 개념은 버트램 굿휴(1869~1924)가 디자인하고 도상학자 하틀리 버 알렉산더(1873~1939)가 명문을 새긴 네브라스카 주청사(1922)와 로스앤젤레스 공공 도서관(1925)에서 정점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 두 건물은 광범위한 건축 조각 프로그램인 타일 벽화, 채색 벽화, 장식용 설비 및 명문(굿휴는 조각가 리 로우리(1877~1963) 같은 일종의 멀티미디어 레퍼토리 아티스트 회사와 협력했다.)을 통해, 일련의 사회적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특히 강해 보인다.


현대

모더니즘의 출현으로, 어떠한 종류의 장식도 혐오했던 1940년경에 ‘말하는 건축’은 진지한 건축 어휘에서 제거되었으며, 더 브라운 더비 같은 상업적이고 토착적인 특이함 속에서만 발견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아이디어의 부흥을 가져왔다. 런런에 있는 테리 파렐(1939-)의 계란컵 모양의 TV-am 본사와 파리에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책 모양 타워가 그 예이다. 마이클 그레이브스(1934-2015)의 언빌트 프로젝트인, 파고-무어헤드 문화센터는 르두의 쇼에 있는 감독관 집의 부흥주의적 사례이기도 하다.

쇼에 있는 감독관의 집 계획안, 클로드 니콜라 르두. via Wikimedia Commons

로버트 벤투리(1925-2018)와 데니스 스콧 브라운(1931-)은 ‘빅 덕’과 관련하여 “제품 모양을 닮은 건물을 ‘덕(오리)’이라고 부른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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