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즈-카트린


리노베이션 중인 루이즈-카트린, 2011. via Wikimedia Commons

루이즈-카트린은 본래 석탄 바지선으로 사용되던 것을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수상 노숙인 쉼터로 개조한 후 파리에 정박하고 있는 배의 명칭이다. 파리 시에 등재된 사적(史蹟)으로서, 여러 해 사용되지 않다가 문화센터로 리노베이션 중이던 2018년 초 센강 범람의 여파로 가라앉았다.


역사

‘루이즈-카트린’은 길이 70미터와 폭 10미터의 바닥이 평평한 철근콘크리트 바지선이다. 이 배는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루앙에서 파리로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리에주’라는 이름으로 건조되었다.

노숙인 쉼터

1929년, 마들렌 질하르트는 그림을 재판매한 수익금으로 바지선을 구입했고, 선박의 이름을 직전에 사망한 동료인 루이즈-카트린 브레슬라우의 이름을 따서 ‘루이즈-카트린’으로 바꾸는 조건으로 구세군에 기증했다. 마들렌과 브레슬라우의 친구였던 위나레타 싱어는 이 배를 루앙에서 파리로 옮기도록 했고, 르코르뷔지에와 일본 건축가 마에카와 쿠니오에게 이를 160개 침상을 갖춘 노숙인 쉼터로 개조하도록 디자인을 의뢰했다. 그는 세 개의 기숙사, 식당, 샤워를 포함하는 화장실 시설, 뱃사공과 쉼터 책임자를 위한 숙소, 이전의 선교(船橋) 부분에 공중정원을 만들었다. 그는 정사각형 모양의 창문과 가느다란 기둥을 설치하고 미닫이문이 달린 찬장을 포함한 가구들을 디자인했다. 르코르뷔지에는 바지선이 겨울에는 노숙인 쉼터로 루브르 박물관 앞에 계류되고, 여름에는 퐁데자르 상류에 떠있는 어린이 캠프로 사용되는 것이 의도라고 썼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사용이 중단되었고, 1950년에 노숙인뿐만 아니라 전과자와 퇴원한 병원 환자를 수용하기 위한 용도로 변경되었다.

리노베이션 및 침몰

구세군은 선체가 침수된 후 1994년에 이 쉼터를 폐쇄했다. 2006년에 그들은 바지선을 케르테키안 가문과 다른 두 명의 후원자에게 매각했다; 건축가 미셸 캉탈-뒤파르가 이끄는 루이즈-카트린 협회는 르코르뷔지에 재단과 프랑스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그것을 박물관과 문화센터로 리노베이션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8년 프랑스 문화부 소속 지역 문화 사업국에 의해 파리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오스테를리츠 역 근처에 정박해 있으며, 파리에서 기념물로 등록된 유일한 선박이다. 바지선은 건축 회사 ACYC가 리노베이션하는 동안 일본 건축가 엔도 슈헤이가 디자인한 임시 금속 구조물로 둘러싸여 있었다. 원래 설치된 것을 모델로 접근용 건널 판자 두 개를 만들 계획이다.

2018년 1월 홍수 이후 센강의 수위가 낮아지자 ‘루이스-카트린’의 뱃머리가 부두 가장자리에 걸렸고, 2월 8일에는 바지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물이 차면서 빠르게 가라앉았다. 소방서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푸셔(예인선)를 투입했고 물에 부딪혔을 때 생긴 파도가 침몰을 앞당겼을 수 있다. 수위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협회는 잠수부들의 점검을 거쳐 바지선을 다시 띄우고, 가능하다면, 프랑스-일본 우호(友好) 160주년을 기념하여 2018년 10월에 “이 이야기와 르코르뷔지에의 작업에 열정적인” 일본 건축가들의 작품 전시와 함께 전시 공간을 일반에 공개하는 일정에 맞춰 리노베이션을 완료할 계획이다. 바지선 인양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부를 요청할 수 있다.


아질 플로탕1

아질 플로탕(프: Asile flottant)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콘크리트 배, ‘루이즈-카트린’의 통명(일반에 알려져 널리 통하는 이름)이다. 프랑스 파리 시내 센강에 떠있으며, 1929년에 설계·준공되었다.

개요

아질 플로탕은 원래 석탄 운반선 ‘’리에주’로 1915년에 건조되었다. 이후 이 배는 루이즈-카트린 브레슬라우의 파트너이자 그녀의 유산을 물려받은 마들렌 질하르트(Madeleine Zillhardt)의 제안에 따라, 구세군의 전쟁난민지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파리 시내에 있던 많은 전쟁난민을 수용하기 위한 난민대피선 ‘루이즈-카트린’으로 개조되었다. 이후, 세계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많은 난민을 수용하고 어린이들의 여름 행사 등에도 활용되어 왔다.

1990년경에는 그 역할을 다하고 센강에 계류되어 있었다.

2006년에는 뜻 있는 사람이 구세군으로부터 배를 넘겨받아 문화재로 남기기 위한 복원을 시작한다.

2008년에는 복원에 협력하고 있던 일본인 건축가 엔도 슈헤이에 의해 복원 공사를 위한 쉘터가 디자인되었다. 그 후에는 경제불황도 있고 (해서) 복원 공사는 근래까지 근근이 진행되고 있었다.

2015년에는 역사적 콘크리트 구조물로 문화재 지정을 받는다.

2017년에는 내부의 정리도 진행되어, 일본인 건축전을 여는 기획이 진행되어 왔다.

2018년 2월의 센강 수위 상승으로 인해 수면 아래로 사라진다.

2020년 10월 19일에 (수면 위로) 부상 공사가 완료된다. 노란 조끼 시위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영향 등으로 2년 10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 콘크리트 등의 보수를 실시하여 코르뷔지에의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복원하는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아질 플로탕은 건축 구조로서 수평연속창 등 코르뷔지에가 제창한 근대 건축의 5원칙 중 일부가 사용되고 있다.

2018년 2월 센강에 가라앉은 배는 2020년 10월에 부상 공사를 완료했다. 사진은 2021년 4월 15일. via Wikimedia Commons

더 읽어보기

『르코르뷔지에, 콘크리트 배를 만나다』, 미셸 캉탈-뒤파르 지음, 류재화 옮김, 체크포인트 찰리, 2024


  1. ‘아질 플로탕’ 항목은 일본 위키피디아 페이지 「アジールフロッタン」를 옮긴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