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맥시온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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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포드 박물관에 설치된 다이맥시온 하우스. via Wikimedia Commons

다이맥시온 하우스는 발명가이자 건축가인 버크민스터 풀러(1895-1983)가 기존 주택건설 기술의 몇 가지 인식된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했다. 풀러는 서로 다른 시기에 주택의 여러 버전을 디자인했다 ㅡ 모든 주택은 공장에서 제조된 키트를 현장에서 조립하여 어떤 현장이나 환경에도 적합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주요 디자인 고려 사항은 배송 및 조립의 용이성이었다.

많은 그의 발명품들에 이름을 붙일 때와 마찬가지로, 풀러는 다이나믹, 맥시멈, 그리고 텐션이라는 단어를 결합하여 다이맥시온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1941년 5월, 캔자스시티의 버틀러 브라더스가 지은 다이맥시온 하우스. via Wikimedia Commons

역사

다이맥시온 하우스는 2년의 개발 끝에 1930년에 완성되었고, 1945년에 재설계되었다. 버크민스터 풀러는 욕실과 주택을 대량생산하기를 원했다. 그의 첫 번째 “다이맥시온” 디자인은 곡물저장통 디자인을 기반으로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육군은 풀러에게 이 주택 유닛을 페르시아만으로 보내달라고 의뢰했다. 1945년에, SF 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1907-1988)이 로스앤젤레스로 배송해 달라고 주문했지만, 주문은 이행되지 않았다.

시베리아 곡물-저장고 주택은 풀러가 “어번 더스트 돔(도시 먼지 지붕)” 효과에 주목한 최초의 시스템이었다: 설치된 많은 경우들에서, 돔의 통풍구 ㅡ 단일 천장 통풍구, 그리고 주변 통풍구 ㅡ 가 제대로 작동되는 경우, 돔이 국부적 수직 열-구동식 와류(소용돌이)를 유도하여 더 차가운 공기를 돔 안으로 빨아들이는 것으로 보고했다. 풀러는 이 효과를 사용하기 위해 곡물-저장고 주택의 후기 유닛을 개조했다.

다이맥시온 하우스의 최종 디자인은 단일 기초 위에 중앙 수직 스테인레스강 스트럿(지주; 버팀목; 받침대)을 사용했다. 방사형으로 뻗은 빔이 바닥을 지탱하는 동안, 자전거 바퀴의 바퀴살과 유사한 구조물이 지붕을 지지한다. 쐐기(V자) 모양의 판금 알루미늄 팬이 지붕, 천장 및 바닥을 형성했다. 각 구조물은 지상에서 조립된 다음 스트럿을 감아 올렸다. 다이맥시온 하우스는 20세기에 자율 건물을 건설하려는 최초의 의식적인 노력을 대표한다.

그것은 패키징 변기, 물 저장고 그리고 지붕에 내장된 대류-구동식 환기 장치를 사용하도록 제안된 프로토타입이었다. 그것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전 세계 지역 ㅡ 온대 해양 섬, 그리고 북미, 남미 및 유라시아의 대평원 ㅡ 을 위해 디자인되었다. 대부분의 현대식 주택에서, 하루에 20리터 미만을 소비하는 음료, 요리 및 설거지와 함께, 세탁실, 샤워실 및 화장실이 주요 물 사용처이다. 다이맥시온 하우스는 중수도 시스템, 패키징 변기, 그리고 샤워실을 대체하는 “포저(분무 장치)”로 물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의도되었다. 포저는 효율적인 압축 공기 및 물 탈지제를 기반으로 했지만, 물 입자가 훨씬 더 작아서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다.


설명

구조 디테일을 보여주는 다이맥시온 하우스의 인테리어. 부분적으로 조립된 알루미늄 천장, 스트럿 그리고 전체 구조를 지탱하고 설비와 배관을 운반하는 단일 중앙 기둥을 볼 수 있다. via Wikimedia Commons

두 개의 다이맥시온 하우스가 프로토타입으로 시제품화되었다 ㅡ 하나는 실내(“바와이즈” 하우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실외(“댄버리” 하우스). 풀러의 의도대로 지어진 다이맥시온 하우스는 건설한 적이나 거주한 적이 없다. 원형 알루미늄 주택의 단 두 가지 프로토타입이, 사업(벤처) 실패 후 고철로 사용되지 않은 다양한 프로토타입 요소와 함께 투자자 윌리엄 그레이엄에게 팔렸다. 1948년, 그레이엄은 다이맥시온 하우스의 하이브리드 버전을 자신의 가족 주택으로 건설했다; 그레이엄은 1970년대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레이엄은 환풍기 및 기타 내부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호숫가 부지에 둥근 집을 지었다. 그것은 풀러에 의해 의도된 독립형 구조가 아니라 기존 목장 주택을 확장한 형태였지만 약 30년 동안 거주했다. 1990년, 그레이엄 가족은 이 집, 그리고 모든 부품 프로토타입을 헨리 포드 박물관에 기증했다. 가능한 한 많은 원본 구성 요소 부품과 시스템을 보존하고 나머지는 풀러의 프로토타이핑 프로세스로부터 원본 문서를 사용하여 복원하는 힘든 과정을 거쳤다. 그것은 완전한 전시품으로 2001년 헨리 포드 박물관의 실내에 설치되었다.

중요한 내부 낙수(落水)받이 시스템에 대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복원된 전시물에서 빗물 수집 시스템의 일부 요소가 생략되었다. 지붕은 맞추기가 어려운 완벽하게 방수되는 지붕이 아니라, 내부의 물을 흡수하여 낙수받이로 흘러들어가게 한 다음 저수조로 떨어지도록 디자인되었다.

거기에는 나중에 퇴비화를 위해 쓰레기를 솜씨 좋게 수축-포장하여 수거할 수 있는 물 없는 패키징 변기가 있어야 했다. 프로토타입 과정 중에, 패키징 변기에 대한 아이디어는 포장용 플라스틱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재래식 정화조 시스템으로 재빠르게 대체되었다. 다른 기능, 특히 “돔 효과”를 기반으로 한 난방 및 패시브 에어컨 시스템은 광고된대로 작동했다.

리처드 버크민스터 풀러에 의해 1940년에 발표된 미국 특허 2220482호, 조립식 욕실. via Wikimedia Commons

많이-수정된 버전의 주택 거주민들은 욕실이 특히 즐거웠다고 말했다. 욕실은 네 개의 끼워 넣은 조각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연결된 주형 구리 버블로 구성되었다. 하단 부분은 주석/안티몬 합금으로 완전히 도금되고 상부 절반은 도색되었다. 각 버블에는 배수구가 있다. 청소에 도움이 되도록, 반경 10cm보다 적은 영역은 없다. 변기, 샤워기, 욕조 및 세면대는 구조용 쉘에 일체형으로 성형되었다. 하나의 버블에는 아이들이 몸을 구부리지 않고 씻을 수 있을만큼 높지만 두 계단(40cm)만 올라가면 되는,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욕조와 샤워기가 포함되어 있다. 타원형 욕조는 타원형 욕조 입구의 왼쪽 안쪽에 조종 장치가 장착되어 있다. 다른 버블은 변기와 세면대가 있는 제대로 된 욕실이었다. 욕실을 위한 환기 장치는 주 세면대 아래에 있는 커다란 저소음 팬으로 냄새가 사람들의 코에 닿지 않도록 막아주었다. 모든 조명은 완전 밀폐형이었다. 김서림 방지를 위해, 거울은 팬에 의해 환기되는 약 상자를 향하고 있었다. 플라스틱 버전의 욕실은 1980년대까지 간헐적으로 이용되었다.

끝부분이 둥글게 휘어져 있는 대형 창문과 경량 구조는 창턱 위를 기어다니고 자전거 바퀴 스타일의 주요 지주를 팅 하고 퉁기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풀러는 또한 그라프 체펠린에 의해 제 자리에 내려질 수 있는 10층짜리 변형을 디자인했다.


비판

다이맥시온 하우스에 대한 비판에는 지역의 부지와 건축적 관용구를 완전히 무시하는 유연한 디자인, 어도비나 타일 같은 저에너지 재료보다는 알루미늄 같은 에너지 집약적인 재료를 사용했다는 점이 포함된다. 풀러는 초기 생산 비용을 상쇄할 수 있는 거의 틀림없는 요인인 가벼운 무게, 뛰어난 강도, 그리고 장기적인 내구성을 위해 알루미늄을 선택했다. 알루미늄은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상당한 초과 수용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항공기 공장에서 집을 짓는 경우 논리적인 선택이었다.

위치타 하우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모든 사람을 위해 비용-효율적인 주택을 생산하려는 시도로 풀러가 받아들인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다이맥시온 하우스의 기술적 개념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육각형 평면 대신 원형 평면을 통합시켰다. 프로토타입에 대한 반응은 이례적으로(엄청나게) 긍정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금형 비용 때문에 산업적으로 생산되지는 못했다. 완벽주의자였던 풀러는, 디자인을 개선할 수 있다고 느꼈고 프로토타입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미완성” 디자인이 사용되는 것을 허용하는 대신 생산을 시작하는 것은 거부했다.